합의의 역설
"일정한 정도의 갈등과 저항도 감수해야 한다." 지난 23일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전에 최대한 많은 분의 의견을 모으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으나, 문장의 무게중심은 앞에 걸려 있었다. 원하지 않는 상황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하는 힘이 권력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스스로 권력의 본질을 해부한 셈인데, 그 칼날이 누구를 향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1
토론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흘 뒤인 27일 총리 주재로 이어진 2차 토론회의 풍경은 묘했다. 공급과 금융과 세제라는 세 개의 축이 놓였고, 전문가들이 각자의 언어로 처방전을 내밀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집을 짓고 싶다는 국토부 장관의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비거주 주택을 장기 보유한 다주택자에게는 양도세 부담 차등화를 고려하겠다는 경제부총리의 언급도 있었다.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 규제를 일관되게 엄격하게 가야 한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실수요자에 대한 핀셋 지원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면서도 해법의 방향은 저마다 다른, 그런 자리였다.
2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이 조세의 본질에 대해 던진 언급이다. 조세 제도는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공정하게 구성원 모두에게 부담시키는 것인데, 이를 특정 영역의 수요를 억제하거나 공급을 늘리기 위해 활용하는 것은 약간 예외적인 상황이라 했다. 원래 목적에서 살짝 벗어난다는 표현까지 썼다. 이 발언의 함의는 가볍지 않다. 역대 정부들이 부동산을 다스리는 가장 손쉬운 도구로 조세를 활용해왔고, 그 결과 취득세와 보유세와 양도세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움직이며 시장을 흔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그 전통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와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순자산은 2경 4561조 원이다. 가구당 가계순자산은 6억 3427만 원. 이 숫자 자체는 건조하다. 문제는 그 안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총리는 토론회에서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1.9퍼센트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토지시가총액은 1경 2660조 원으로 전년 대비 4.6퍼센트 늘었고, 주택시가총액은 8.0퍼센트 증가한 7710조 원이다. 서울의 토지만 4507조 원, 주택만 2894조 원이다. 이 숫자들 앞에서 조세 정책이 부동산의 원래 목적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고상한 원칙론으로 들리기도 하고, 현실에 대한 무력감의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3
토론회를 두고 일각에서는 답정너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론을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의견을 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문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집값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한 신문의 집계에 따르면, 집권 1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이 이전 정부의 같은 기간을 넘어섰다. 서울 평균 전셋값은 7억 원을 돌파했고, 1년 새 보증금이 5500만 원 올랐다는 보도도 나온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합의라는 것은 아름다운 말이다.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상대의 입장을 들어보면 일정한 선에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기대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부동산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영역도 드물다. 집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 한 채를 가진 사람과 여러 채를 가진 사람, 서울에 사는 사람과 지방에 사는 사람, 이미 산 사람과 앞으로 사려는 사람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 일은 원래 쉽지 않다. 조세제도에 시한이 있어 쫓기긴 하는데 오늘 이야기하다 부족하면 한 번 더 해보자는 대통령의 말에서, 정책의 착지점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4
공직자의 최대 덕목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옳다.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경우가 있다는 것도 옳다. 그런 걸 하라고 자신 같은 사람을 뽑아놓은 것 아니냐는 자문도 정확하다. 그러나 책임을 지려면 먼저 결정을 해야 한다. 결정 없는 책임은 공허하고, 합의 없는 결정은 갈등을 부른다. 이 딜레마 사이에서 권력은 늘 외로운 법이다.
망국적인 부동산 공화국에서 벗어나겠다는 대통령의 표현은 강했다.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는 부동산 불로소득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파괴하고 있다는 진단도 날카로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진단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처방을 내리고 그 부작용까지 감당하는 것이 권력의 몫이다. 두 차례 토론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갔으나, 정책의 윤곽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조세 개편의 시한이 다가오고 있고, 시장은 이미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의견을 모으는 동안 가격이 먼저 결론을 내버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바깥에서 논평하는 일은 쉽다. 칼럼니스트라는 자리는 결정의 무게를 지지 않아도 되는 특권적 위치다. 그 점에서 나의 이 글 역시 토론회에서 오간 수많은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