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의 무게
집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거기 사느냐 안 사느냐가 기준이 되었다.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바로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실거주 1주택자는 12억에서 14억 원으로 높이고, 비거주 1주택자는 9억 원으로 낮춘다. 같은 집, 같은 값, 같은 소유권인데 주인이 그 안에서 잠을 자느냐 아니냐에 따라 세금이 갈린다. 양도소득세의 장기보유특별공제도 2029년부터는 보유 기간이 아니라 거주 기간을 잣대로 삼는다. 오래 갖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더 이상 공제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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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계에는 분명한 철학이 있다. 주택이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관용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담을 지운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문에서 되풀이되는 표현이 '실거주 중심'이다. 시가 20억 원 이하 주택에 사는 1주택자는 종부세에서 빠지고, 10년 이상 거주 후 양도하면 기본공제가 250만 원에서 2500만 원으로 뛴다. 반대로 비거주 상태로 시가 50억 원짜리 집을 보유하면 종부세가 올해의 네다섯 배로 불어난다는 시뮬레이션이 조간지마다 실렸다. 집을 사두고 전세를 놓는 행위는 이제 조세체계 안에서 명시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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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거주라는 개념이 얼마나 투명하게 획정될 수 있느냐다. 전근으로 지방에 내려간 부모,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 올라온 자녀, 요양병원에 입원한 고령자—정부는 이들에게 최대 3년까지 거주 기간으로 인정하는 예외 조항을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예외가 늘어날수록 제도는 복잡해지고, 복잡해질수록 해석과 분쟁의 여지가 커진다. 실거주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건강보험 자격득실, 전입신고, 자녀 학적 조회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 이미 나왔다. 납세자의 일상이 과세 당국의 검증 대상으로 노출되는 시대가 열린다.
야당은 "닥치고 세금"이라 비판하고, 여당 일각에서도 "수도권 표심에 악재"라는 우려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고가 주택 밀집지인 강남·서초에 시가 40억 원 초과 아파트가 6만8천여 채 집중돼 있다는 집계가 나왔으니, 이번 개편의 직격탄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명료하다. 그러나 정책의 성패는 결국 의도한 대로 매물이 나오느냐, 아니면 매물 잠김이 심해지느냐에 달려 있다. 양도세 중과를 2년 한시 완화하고, 고령자가 수도권 집을 처분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면 양도세를 절반까지 깎아주겠다는 조항은 퇴로를 열어두려는 장치다. 다만 그 퇴로가 실제로 작동할지, 아니면 또다시 "버티면 이긴다"는 학습효과가 작동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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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세금은 늘 행위를 유도하는 신호였다. 창문세를 물리면 창문을 막았고, 수염세를 매기면 수염을 밀었다. 이제 거주하지 않으면 불이익이라는 신호가 발송되었다. 한편에서는 공정한 조세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한 압박이라 한다. 그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터이나, 확실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재산권의 내용을 규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봉건제 아래에서 농노는 땅에 묶여 있었다. 그가 경작하는 토지는 그의 것이 아니었으되 그의 노동은 그 땅에 종속되었다. 근대 재산권은 소유와 거주를 분리함으로써 이 속박에서 벗어났다. 집을 사되 살지 않을 자유, 떠나되 팔지 않을 자유—이것이 근대적 소유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제가 말하는 바는 소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거주해야 한다. 거기 있어야 한다. 주소지에 육신을 두어야 한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단체채팅방에서 "최하 몇 억 이하로는 매물을 올리지 말라"고 담합을 주도한 입주민이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뉴스가 같은 날 실렸다. 시장을 길들이려는 국가와, 가격을 담합하려는 주민과, 그 사이에서 거래를 기다리는 수요자들이 한데 뒤엉켜 있다. 거주가 의무가 되고, 이동이 비용이 되고, 머무름이 증명 대상이 되는 풍경이다. 중세 도시의 시민이 성벽 안에서 일 년 하고 하루를 살아야 자유민 자격을 얻었던 것처럼, 이제 세제가 묻는다—당신은 거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