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팡 로고 부루팡 AI 거래추정시스템
부루팡 시평

멈춤의 자원

부루팡 富樓房 · 연구인 · 2026-08-28

멈춰선 공사장이 집이 될 수 있을까. 철근이 녹슬고 타워크레인이 시간을 멈춘 채 서 있는 현장을 보면서 그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자금이 끊기고 사업성이 사라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은 대개 매몰비용의 무덤으로 여겨졌다. 부실은 처리의 대상이었지 공급의 재료가 아니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 상식을 뒤집으려 한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한국토지주택공사(LH), 금융감독원이 이달 27일 관계기관회의를 열어 논의한 것은 이 멈춤을 집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자금난으로 지연되거나 중단된 PF 사업장을 LH가 사들여 매입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시범으로 12개 사업장, 2600호 규모와 약정을 체결한 바 있는데, 올해는 범위를 넓혀 부실이 발생한 곳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추진되던 곳까지 포함한다. 아직 착공 전이라 자금조달에 발이 묶인 사업장, 이미 준공됐거나 준공을 앞둔 기축 물량도 대상에 들어간다.

국토부 주거복지지원과장은 "PF 사업장은 가장 빠르게 집이 될 수 있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이 흥미롭다. 부실을 자원이라 부른다는 것. 언뜻 형용모순처럼 들리지만, 들여다보면 나름의 논리가 있다. 입지는 이미 확보되어 있고, 인허가 절차도 상당 부분 진행되었으며, 시공 중인 구조물이라면 골격까지 서 있다. 신규 택지를 확보해 설계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시간이 절약된다. 문제는 오로지 돈이다. 돈이 돌지 않아 멈춘 것이니 돈을 넣으면 다시 돌아간다는 계산이다.

금융감독원은 기존의 부동산PF 총괄지원센터 기능을 확대·개편하여 PF 금융애로 해소센터로 바꾸고, 산업은행은 건설사 금융애로 해소센터를 별도로 설치한다. 다음 달 1일부터 가동한다. 센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창구를 열어 막힌 곳을 뚫어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LH는 다음 달 15일 금감원에서 열리는 PF 부실사업장 매각설명회에 참여해 현장 상담까지 한다고 한다. 공공이 민간의 짐을 덜어주고, 민간은 미분양 부담에서 벗어나며, 그렇게 확보한 주택은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싼 임대료로 돌아간다. 삼자 모두에게 이로운 구조처럼 보인다.

LH가 내놓은 향후 계획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2028년부터 매년 10만 가구 이상을 착공하고, 5년간 130조 원 이상을 투입해 총 42만 6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공공택지와 도심 유휴부지, 학교용지, 그리고 신축 매입까지 동원한다. 물량의 크기도 크기려니와, 민간이 위축된 자리를 공공이 메운다는 구도가 뚜렷하다. 민간 건설업계가 고금리와 PF 부실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사이, 공공이 발주를 늘려 시장을 받쳐주는 형국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연간 발주 규모가 30조 원 수준으로 확대된다.

한편 기준금리 3퍼센트 시대가 열렸다.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리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8퍼센트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계신용 잔액은 6월 말 기준 2019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되어 사상 처음으로 2000조 원을 넘어섰다. 빚을 내 집을 사는 시대가 저무는 것인지, 아니면 빚의 무게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중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금융비용의 상승이 민간 공급을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러니 공공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에 가깝다. 서울시의 모아주택 1호 사업장이 사업 착수 4년 만에 준공되어 내달 입주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광진구에서 99가구짜리 노후 저층 주거지가 215가구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규모는 작지만 상징성은 작지 않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차를 밟으면 집이 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31년까지 모아주택으로 4만 가구 착공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멈춤이 자원이 되고, 부실이 공급이 되며, 공공이 민간을 대신하는 시대. 이것이 비상한 상황의 비상한 처방인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윤곽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한 가지 역설은 남는다. 시장이 스스로 짓지 못한 집을 공공이 대신 지을수록, 시장이 스스로 집을 지을 힘은 더 약해지지 않을까. 멈춤을 자원 삼아 굴러가는 바퀴가 언젠가 스스로 굴러갈 수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약속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