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와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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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의 한 회의실. 금융위원회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는 자리다. 슬라이드에는 굵직한 숫자들이 흐른다. 9조2417억원. 전년 대비 98.7퍼센트 증가. 청년미래적금에 1조7000억원, 우리아이자립펀드 1465억원, 햇살론 특례보증 4804억원. 관료의 언어로 정제된 낙관이 브리핑룸을 채운다. 청년의 종잣돈, 서민의 생활비, 아이의 첫 자산. 정책의 그물이 촘촘해지고 재정의 물줄기가 불어난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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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은행 창구의 풍경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집계에 따르면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의 신규 이용 건수가 1년 새 40퍼센트 넘게 줄었다. 신혼부부 전용 상품은 2년 사이 57퍼센트나 감소했다. 문제는 수요의 증발이 아니다. 서울 중위 전셋값이 4억원을 훌쩍 넘는 시점에 대출 기준 한도는 여전히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출이 필요한 집에는 대출이 닿지 않고, 대출이 닿는 집은 살 만하지 않다. 제도의 그물코가 현실보다 굵어진 것이다.
청약통장의 이탈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청약통장 가입자는 183만 명, 해지자는 216만 명. 30대에서 10만5천 좌, 40대에서 12만 좌가 순감했다. 2022년부터 4년 넘게 이어지는 탈(脫)청약 행렬이다. 10년을 부어도 내 집 마련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판단이 숫자로 쌓이고 있다. 사다리는 준비되어 있으나 첫 발을 디딜 문턱이 너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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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財政)과 제도(制度). 이 둘 사이에는 미묘한 시차가 있다. 예산은 의지의 표명이지만, 제도는 현실의 통로다. 1942년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를 설계할 때, 그 핵심은 보편성이었다. 누구나 닿을 수 있는 그물이어야 한다는 것. 선별의 정밀함보다 보편의 관대함이 복지국가의 기초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정책금융은 종종 이 순서를 거꾸로 밟는다. 정밀한 타겟팅 속에서 정작 가장 절실한 수요가 그물 바깥으로 밀려난다.
금융위가 내년 출시하겠다는 K-민생지킴대출의 설계를 보라. 소득과 관계없이 신용 하위 50퍼센트 이하, 최초 100만원, 금리 4.5퍼센트, 만기 10년. 불법사금융 이용을 예방하고 성실상환 시 제도권 금융으로 도약하게 한다는 취지다. 선의는 분명하다. 그러나 100만원이 4억원짜리 전셋집과 얼마나 가까운가. 경제 칼럼을 쓰는 필자조차 그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다.
정책의 언어는 사다리를 좋아한다. 청년 주거사다리, 자산형성사다리. 그러나 사다리는 문턱을 넘어야 오를 수 있다. 버팀목 대출의 한도가 시장 전셋값의 절반에 못 미친다면, 그것은 사다리 아래에 깔린 장애물이다. 청약통장이 10년을 기다려도 당첨의 희망이 없다면, 그것은 사다리 위에 걸린 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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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취임하면 서울시와 공급 협의에 나서겠다고 했다. 신속한 공급, 예측 가능한 정책. 모두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공급의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접근의 문턱이다. 아무리 좋은 집이 지어져도 대출이 닿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물량이 나와도 청약이 작동하지 않으면, 정책은 숫자의 전시에 그친다.
9조원의 예산이 흐르는 곳과 33만 명의 청약통장이 사라지는 곳.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더 큰 예산이 아니라 더 낮은 문턱일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다. 정책의 선의가 현실의 창구에 닿기까지, 그 거리는 누가 걸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