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의 새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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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는다, 임대인이 사라지면 세입자가 편해지는가. 집주인을 증오하는 정서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임대인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지대를 거둬가는 자, 노동 없이 타인의 주거 불안을 먹고사는 자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니 다주택자를 옥죄면 집값이 잡히고 세입자가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는 자연스럽다. 나도 그 정서에 완전히 면역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학은 정서와 결과 사이에 놓인 우회로를 따져보라고 가르친다. 규제가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 일은 드물고, 시장은 당신이 미워하는 자를 밀어낸 자리에 당신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자를 데려다 놓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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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집합건물 2채를 보유한 이른바 2주택자 비중이 3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대출 규제와 세제 강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주택자를 시장에서 퇴장시키겠다던 정책의 숫자상 성과라 할 만하다. 그런데 임대주택 공급은 어떻게 되었나. 한 경제지의 집계를 보면 민간 임대주택 공급이 3년 새 81퍼센트나 줄었다. 줄어든 것이 아니라 증발했다고 해야 어울린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시장에서 계약갱신청구권 대신 집주인과 합의해 재계약하는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세입자들이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집주인 비위를 맞추는 이유는 하나다. 나가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압구정의 한 전세는 종전 28억5천만 원에서 38억 원으로 뛰어 재계약되었다. 월세가 두 배로 올라도 재계약에 응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임대인을 밀어냈더니 임대물량이 사라졌고, 임대물량이 사라지니 남은 집주인의 협상력만 강해졌다. 세입자를 위한다던 규제가 세입자를 조르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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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이 역설을 모르지 않는 듯하다. 조간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당국은 기업형 임대사업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개인 다주택자에게 닫은 문을 법인에게는 살짝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수도권 유휴부지 5천억 원어치를 사들여 주택공급에 쓰겠다고 공모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민간이 공급을 꺼리니 공공이 직접 토지를 비축해 메우겠다는 첫 시범사업이다. 여기까지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고개가 꺾인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임대차 시장에 진출을 늘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세 중심이던 한국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가파르게 오르자 글로벌 자본이 투자 기회를 포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신이 증오하던 동네 아저씨 집주인을 쫓아냈더니, 그 자리를 뉴욕이나 싱가포르의 펀드매니저가 차지하려 한다.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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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오래된 격언이 있다. 누군가 그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자리를 비워도 그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빈 방에는 새 주인이 온다. 다만 새 주인이 옛 주인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개인 임대인은 비효율적이고 탐욕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이 사회에 세금을 내고 표를 행사하며 이웃으로 살았다. 기업형 임대가 공급을 늘린다면 반길 일이지만, 글로벌 자본이 한국 세입자의 월세를 거둬가는 세상이 과연 더 공정한 세상인지는 물어야 한다. 나는 다주택자 규제를 철회하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묻는다, 우리가 밀어낸 자리에 누가 들어오는지를 살폈는가. 규제의 성패는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로 판가름 난다. 세입자를 위한다면서 세입자의 선택지를 좁히고, 투기를 막는다면서 더 큰 자본에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닌지. 독자 여러분, 빈 방의 새 주인이 누구인지 한번 따져보시라. 그 답에 따라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치른 비용의 명세서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