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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팡 시평

틈새의 경제학

부루팡 富樓房 · 연구인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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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과 8월 사이 서울 동대문구의 전용 1제곱미터당 중위 실거래가가 서울 전체 평균을 넘어섰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의 집계다. 성북구와 중랑구도 서울 평균선에 바짝 붙었고, 경기도에서는 광명과 수지가 눈에 띄게 치고 올라왔다. 조간들은 이를 '키 맞추기'라 불렀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지역이 평균선을 향해 정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줄 맞춰 서는 것은 아이들뿐 아니다. 돈도 그렇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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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계부채 총량 증가율 목표를 완화한 것은 실수요자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출의 물꼬가 트이자 그 물은 예상과 다른 곳으로 흘렀다. 서울 핵심 지역은 여전히 토지거래허가제와 각종 규제에 묶여 있고, 대출 한도와 금리 조건도 까다롭다. 반면 외곽 중저가 주택은 정책 대출 문턱이 낮다. 돈은 언제나 저항이 적은 경로를 찾는 법이어서, 매수세는 강남이 아니라 동대문과 성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 14개 자치구의 올해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벌써 지난해 연간 상승치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오는 이유다. 규제를 완화했더니 규제 바깥에서 가격이 뛰는 형국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풍선 효과'라는 표현이 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른다는 비유다. 그러나 요즘 부동산 시장은 풍선보다 물에 가깝다. 풍선은 힘을 주면 그 자리에서 변형되지만, 물은 틈만 있으면 어디로든 샌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사적 자금이 그 빈자리를 메운다. 올해 들어 8개월 만에 주택 구입 과정에서 동원된 증여·상속·친족 대출 등 사적 자금이 13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연간 규모를 이미 상회한 것이다. 은행 문이 좁아지니 가족 창구가 열린 셈인데, 정책 당국이 의도한 시나리오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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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영통과 화성 동탄에서는 또 다른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연 1.5퍼센트 저리 주택대출은 전용 85제곱미터 이하로 제한된다. 그 조건 하나가 평형별 가격 서열을 뒤집어 놓았다. 대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34평형에 수요가 몰리면서 같은 단지 42평형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통상 넓은 평형이 비싼 것은 부동산의 상식이었는데, 대출 조건 하나가 그 상식을 깨뜨렸다. 가격은 면적이 아니라 자금 조달 가능성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시장이 증명해 보인 셈이다.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뒤틀림이 감지된다. 시공사 선정 당시 내건 특화 설계가 인허가 심의를 거치면서 달라지는 사례가 잇따른다. 신반포4차는 7개동 제안이 11개동으로 늘었고, 한남2구역은 고도 완화가 무산됐다. 수주 경쟁에서 내세운 조감도와 실제 지어질 건물이 다르다면, 그 사이에서 조합원과 시공사 간 갈등은 불가피하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에서는 상가 세입자들이 수억 원대 이주 보상을 요구하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재건축이라는 긴 여정에서 금융 관문, 설계 변경, 세입자 갈등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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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아파트 토지거래허가 신청 건수가 지난해 10월 서울 전역 지정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출 금리는 오르고, 세제 개편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며, 시장은 관망 모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관망이 거래 실종을 뜻하지는 않는다. 거래는 규제가 느슨한 외곽으로, 대출 조건이 유리한 평형으로, 그리고 은행 창구 대신 가족 금고로 우회할 뿐이다. 정책이 시장을 길들이려 할수록 시장은 예상치 못한 틈새로 스며든다.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페티는 "노동은 부의 아버지, 땅은 부의 어머니"라고 썼다. 그 은유를 오늘에 대입하면, 대출은 부의 조산사쯤 될 것이다. 누가 어떤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느냐에 따라 집값의 서열이 재편되고, 평형 간 가격이 뒤집히며, 지역 간 격차가 좁혀지거나 벌어진다. 규제가 촘촘해질수록 그 조산사의 손길은 더욱 결정적이 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돈은 저항이 적은 곳으로 흐른다. 정책의 역설은 거기에 있다. 의도한 곳을 막을수록 의도하지 않은 곳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