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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팡 시평

한시(限時)의 문법

부루팡 富樓房 · 연구인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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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 창으로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오후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섰다. 취임 472일. "촌음을 아껴가며 최선을 다해 왔다"는 첫마디에 이어 "부동산 시장을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다짐이 흘러나왔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잃어버린 30년"을 피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경제수도 서울과 행정수도 세종의 2수도 구상이 윤곽을 드러냈다. 하루 전, 국토교통부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의무 유예를 내년 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도입할 때 '한시적(限時的)'이라 못 박았던 바로 그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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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猶豫)란 본래 머뭇거림이다. 결단을 잠시 미룬다는 뜻이다. 5월의 조치는 무주택자가 세입자를 낀 토허구역 주택을 살 때 잔여 임대차 기간만큼 실거주를 미뤄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실수요자의 거래 여건을 보완하되 투기적 수요는 차단한다는 취지였고, 어디까지나 한시적 보완책이라 했다. 넉 달이 지났다. 유예 신청 기한이 1년 늘어났고, 세입자의 계약 갱신권 행사분까지 인정 범위에 들어왔다. 갱신 1회, 최대 2년. 숫자만 따지면 2029년 12월 31일까지 입주를 미룰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시가 끝나지 않고 연장되는 광경은 낯설지 않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완화가 그랬고, 취득세 특례가 그랬으며, 각종 금융 규제 유예가 그랬다. '한시'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시장은 그것이 '상시'로 바뀔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한다. 정책이 약속을 어길수록 다음 약속의 신뢰는 옅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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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유예를 거듭하는 동안 시장은 제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6억 3663만 원을 찍었다. 이전 정부 시절의 최고치마저 넘어선 역대 신기록이다. 전세 매물은 줄고, 세입자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갱신(更新)을 택한다. 8월 갱신계약 비중이 60퍼센트에 달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그런데 갱신을 원하는 세입자와 실거주를 원하는 집주인 사이의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7월까지의 임대차 분쟁 조정 건수가 이미 작년 전체를 넘어섰다. 정부가 토허구역 유예를 연장한 것은 세제 개편에 따라 매물이 좀 더 원활히 거래되도록 돕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집이 팔려도 세입자가 눌러앉으면 매수인은 들어가지 못하고, 전세 공급은 여전히 막혀 있다. 유예의 연장이 전세난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응급 처방이지 치료가 아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84주 연속 올랐고,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은 더 깊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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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흔들림 없이 가겠다"고 말했다. 흔들림 없음과 유연함 사이의 균형은 언제나 어렵다. 한시라고 약속한 조치를 연장할 때, 그것이 불가피한 현실 대응인지 아니면 흔들림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약속의 잦은 수정이 정책 자체의 효력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이 글이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또 다른 '한시적 조치'가 발표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의 전망은 대개 빗나가기 마련이니 그리 믿을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전세 시장에서 갈 곳을 찾는 세입자들, 계약 갱신을 둘러싸고 다투는 임대인과 임차인, 신축을 기다리며 분담금을 걱정하는 조합원들—이들에게 정책의 '한시'는 그저 말장난이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 그 자체다. 한시가 반복되면 그것은 이미 한시가 아니다. 시한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지켜져야 한다. 유예가 끝나는 그 날이 정말 오기는 할 것인가. 정책을 믿어도 되는 것인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