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화(良性化)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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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는 언제나 타인의 행위다. 내가 사는 것은 실수요이고, 남이 사는 것은 투기다. 이 오래된 이중성이야말로 부동산 정책이 늘 궤도를 이탈하는 이유일 터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당정협의회에서 내놓은 농지 전수조사 후속조치는 바로 그 질문을 다시 들춰 올린다: 투기와 관행의 경계는 어디인가.
정부 발표에 따르면, 투기가 명백한 농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분하고, 농촌 현실에서 발생한 "관행적 위반"은 정상화·양성화한다. 1988년 이후 38년 만에 추진되는 농지 불법 전용 양성화다. 38년이라면 세대가 바뀌는 시간이다. 그동안 불법은 관행이 되었고, 관행은 일상이 되었으며, 일상은 권리 의식으로 굳었다. 원상회복을 명하기엔 현실이 너무 멀리 왔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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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것은 구분의 칼날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짓 영농계획을 제출해 농지를 산 뒤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는 투기다. 농업법인으로 농지를 취득해 부동산업을 영위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농업인끼리 편의상 농지를 바꿔 경작하거나, 마을 농지를 한 임차인이 모아 경작하는 일은 투기와 무관한 관행적 임대차로 분류된다. 상속·고령농이 휴경 중인 농지, 매수 희망자가 없어 방치된 땅은 농지은행에 위탁하면 처분의무가 유예된다.
이 구분은 명쾌해 보이나, 현장에선 경계가 흐릿할 수밖에 없다. 30년 전 아버지가 상속받은 농지를 도시에 사는 아들이 임대하고 있다면, 이것은 투기인가 관행인가. 농지은행이라는 피난처(避難處)가 마련되었으나, 그 수용 능력이 현실의 수요를 감당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목은 전·답이되 오랜 세월 임야화된 토지는 실제 현황에 맞게 지목을 변경하고 농지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 한다. 38년간 농지법을 피해 자라난 나무를 이제 와 베어내기보다 숲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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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에 국토교통부는 '주거안정플랜'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공적주택 119만 가구를 공급하는데, 그중 80퍼센트가 임대다. 중산층도 최대 20년 거주할 수 있는 '보편형 공공임대' 19만 가구가 신설된다. 취약계층 중심이던 공공임대의 문턱을 낮춰 무주택 중산층까지 포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공분양 비중이 전체의 20퍼센트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 집 마련" 욕구를 외면하는 것이냐는 목소리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값이 84주째 상승 중인 현실에서, 정책 당국이 "언젠가 당신도 집을 살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 모른다. 차라리 "안정적으로 오래 사는 것"을 목표로 재설정하는 편이 솔직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가 아닌 칼럼니스트가 이 정책의 성패를 점치기는 어렵다. 다만 "포기"로 읽힐지 "전환"으로 읽힐지는 정치적 수사(修辭)만이 아니라 연내 확정될 입주 조건과 임대료 수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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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주 상승의 주역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초반엔 강남과 한강변이 이끌었고, 최근엔 외곽 중저가 지역이 주도한다. 대출 규제와 분양가 상승으로 자금력이 약해진 실수요자들이 거주 면적을 줄여 매입에 나선 결과다. 전용 60제곱미터 이하 아파트 상승률이 대형의 세 배에 달한다는 통계는 시장의 왜곡을 말해주는 동시에, 실수요의 분투를 드러낸다.
이들의 행위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소형 쏠림은 규제 회피인가, 적응인가. 전 금감원장은 "대출을 무분별하게 풀면 집값이 폭발한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사적 임대 시장의 정상화"와 "일관성 있는 정책 철학"이 근본 처방이라 했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한 교수는 "금융위에 부동산 간신이 있다"고 질타했다. 정책 내부에서조차 노선 분열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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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농지로 돌아가자. 양성화의 논리는 결국 현실 추인(追認)이다. 38년간 농지법 바깥에서 형성된 질서를 뒤늦게 법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이 논리가 부동산 전반에 확산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규제를 피해 소형으로 쏠린 시장, 임대차법의 후유증으로 비틀린 전세 시장, 대출 한도에 맞춰 평형을 줄인 실수요자들—이들 모두 어떤 의미에서 '관행적 적응'의 산물이다. 훗날 이것을 양성화해야 할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투기와 관행의 구분은 결국 시간이 정한다. 38년 전의 불법이 오늘의 현실이 되었듯, 오늘의 규제 회피가 내일의 새로운 질서가 될 수도 있다. 농지 양성화 뉴스를 읽으며 묻게 된다: 정책이 현실을 이끄는가, 현실이 정책을 끌고 가는가. 38년이라는 숫자가 답을 속삭인다. 정책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할 때, 결국 현실이 정책을 양성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