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주, 혹은 통제의 미망(迷妄)
"계곡 정비보다 쉽다"던 서울 집값 잡기가, 85주 연속 상승이라는 숫자로 되돌아왔다. 한국부동산원 집계 기준 9월 셋째 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쉬지 않고 올랐고, 그 기간은 문재인 정부 시절 세운 역대 최장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음 주에도 오르면 기록은 경신된다. 강남 3구가 하락세를 보인다 해도 강북과 서남권이 그 빈자리를 메우며 전체 지수를 끌어올리는 구조다. 정부가 발표한 숫자와 시장이 만들어낸 숫자, 그 사이의 거리가 85주라는 시간으로 측정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숫자가 도리어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정부는 초고가 주택과 비거주 주택에 대한 규제를 예고하고, 청년 주거 안정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수도권에 77%의 공적주택을 집중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조간들의 취재에 따르면 정책 수혜 대상인 청년층 사이에서조차 냉담한 반응이 이어진다. 계획과 숫자가 착공과 입주로 이어지기까지의 시차, 그리고 그 시차 동안 시장이 만들어낼 또 다른 85주에 대한 회의(懷疑)가 깔려 있다.
베를린의 사례는 이 회의에 역사적 깊이를 더한다. 임대 가구 비율 84%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세입자 천국'이었던 그 도시가 지금은 임대료 폭등과 주거난에 시달린다. 민간 임대주택 몰수를 공약한 극좌파 정당이 시의회 선거에서 승리할 정도로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임대주택의 양적 우위가 시장의 가격 신호를 잠재우리라는 믿음이 어떻게 좌초하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이다.
서울도 그 궤적 위에 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가운데 월세 비중이 52%를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포인트 이상 높아진 수치다. 전세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실수요자들이 월세로 이동하고, 평균 월세는 164만 원을 돌파했다. 전세의 월세화(月貰化)는 시장이 규제를 우회하는 방식이며,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세입자의 몫이 된다. 주거비 부담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다는 보도가 여러 신문에서 반복된다.
삼성전자가 무주택 임직원에게 제공하기 시작한 저금리 주거안정 대출은 또 다른 변수다. 수원 영통, 용인 기흥, 화성 동탄 등 이른바 반도체 벨트의 아파트값이 한 주 새 눈에 띄게 뛰었다. 경기 지역 상승률이 26주 만에 서울을 추월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정부가 '평탄화'를 언급할수록 외곽으로 수요가 번지고, 수요가 번지는 곳마다 가격이 따라 오른다. 송도의 6억~7억 원대 준신축 대단지에 실수요자가 몰린다는 보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계획을 발표하고, 시장 참여자들은 그 계획의 시차와 허점을 읽는다. 85주라는 숫자는 그 독해력의 승리를 기록한다. 문제는 승자가 누구냐는 것이 아니다. 패자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집을 사지 못해 월세를 전전하는 청년, 전세 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공사에 대위변제를 떠넘기는 젊은 채무자, 규제 밖에서 가격 상승의 파고를 맞는 외곽의 실수요자. 정책이 시장을 따라잡지 못할 때, 비용은 가장 약한 고리에 집중된다.
취임 일성으로 "주택 공급은 계획과 숫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밝힌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으려면, 그 말이 86주째에도 유효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말을 듣지 않는다. 시장은 말을 만들어낼 뿐이다.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과 통제되지 않는다는 현실 사이, 그 간극이 85주라면 — 우리는 무엇을 통제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