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앤"을 지워달라
"서민 아파트 티내기 싫어요."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공급한 공공분양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단지명에서 공공 브랜드 '자연앤'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평택 고덕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이 동탄과 안양으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GH는 "준공 전 변경은 선례가 없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이미 LH는 3년 전부터 단지명 변경에 자율 방침을 적용해왔다. 그런데 자율이 허용되자 일부 단지에서는 한술 더 떠 "민간 브랜드를 달라"는 요구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름값의 경제학
단지명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부동산 시장의 오랜 상식이다. 같은 평형, 같은 입지라도 민간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를 단 아파트가 공공분양보다 시세에서 앞서는 일이 드물지 않다. '래미안'과 '자이'가 붙으면 가격이 달라지고, '자연앤'이나 '휴먼시아'가 붙으면 시장의 시선이 달라진다. 입주민들의 요구는 따라서 순수한 심미적 취향이 아니라 냉정한 자산 가치의 계산이다. 공공(公共)이라는 단어가 호재가 아니라 악재로 인식되는 시장에서, 그 꼬리표를 떼고 싶은 마음을 누가 탓하겠는가.
그러나 이 계산이 성립하려면 전제가 있다. 공공이라는 이름이 실제로 자산 가치를 깎아먹는다는 시장의 합의다. 그리고 그 합의는 다시 물어야 한다—왜 공공은 민간보다 못한 것이 되었는가.
낙인(烙印)의 계보
한국에서 공공주택은 오래전부터 시혜(施惠)의 대상이었지 권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영구임대'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이미지, '국민임대단지'라는 안내판이 주는 느낌—거기에는 배려와 동시에 구분 짓기가 스며 있다. 반면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공주택은 노동자 계급의 자부심이었다. 1920년대 지어진 칼 마르크스 호프(Karl-Marx-Hof)는 지금도 관광 명소다. 싱가포르 국민의 80%가 거주하는 HDB 아파트는 시민권의 물리적 구현이다. 거기서 공공은 열등의 표지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 사이의 계약서다.
한국의 공공주택이 낙인이 된 데에는 공급 방식의 문제도 있었다. 저소득층 집중 배치, 외관과 마감의 차별화, 그리고 무엇보다 민간 시장 중심의 주택 공급 구조가 공공을 '어쩔 수 없이 사는 곳'으로 위치 지었다. 정부가 아무리 보편형 공공임대를 말해도, 공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수치(羞恥)의 기호로 각인된 뒤에는 그 기호를 지우는 것이 시민의 첫 번째 요구가 된다.
250만 호의 역설
정부는 공공임대 2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매년 30조 원에 달하는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중형 평형을 늘리고 마감 품질을 높여 중산층도 입주하는 '보편형 공공임대'를 표방한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은 그 청사진을 조롱한다. 공공이라는 이름을 지우려는 시민, 공공 브랜드가 붙으면 시세가 떨어진다는 시장의 믿음, 그리고 공공분양에 당첨되고도 "민간 브랜드를 달라"고 요구하는 입주민.
재정을 동원해 집을 짓는 것과 그 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다. 후자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250만 호를 지어도 그 250만 호가 시장에서 2등 시민의 거주지로 남는다면, 공공주택 정책은 주거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하는 데 그칠 수 있다.
공공의 존엄(尊嚴)
조정대상지역 일시적 2주택 특례기간이 3년에서 2년으로 단축된다. 상생임대 특례도 예정대로 종료된다. 정부는 세제 개편안 후속 조치로 시행령을 의결하면서, 과세특례의 합리화를 명분으로 들었다. 특례가 남용되지 않도록 기한을 두고, 요건을 강화하고, 예외를 줄인다. 그러나 공공주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어떤 시행령으로도 고칠 수 없다.
결국 공공의 품격을 높이는 일은 건축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언어의 문제다. 입지와 설계와 마감에서 민간과 차별 없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 그리고 공공이라는 단어가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열등이 아니라 보편으로 읽히는 문화를 만드는 것. 전자는 예산의 문제이지만, 후자는 세대에 걸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서민 아파트 티내기 싫어요"라는 말은 입주민 개인의 속물적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공공주택 정책이 반세기 넘게 쌓아온 실패의 누적이고, 민간 시장 중심 주거 체제가 시민의 언어에 새겨놓은 상흔이다. 이름을 지운다고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다. 공공이 당당해지려면, 공공이 먼저 당당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