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배, 집을 가진 자의 시간
## 1. 상위 20%와 하위 20%의 거주 주택 가격 격차가 290배라는 통계가 나왔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20% 가구의 거주 주택 평균 가격은 6억9,341만 원으로 1년 전보다 7.7% 올랐고, 하위 20%의 자가(自家) 거주 비율은 6.6%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 숫자들을 자산 불평등의 증거로 읽는 일은 이제 너무 쉬운 결론이다. 문제는 그 격차가 단순한 가격의 비교가 아니라, 집이라는 부동산(不動産)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하위 20%의 열집 중 아홉 집은 오늘도 소유의 바깥에서 주거를 해결한다. 상위의 집값이 오르는 동안 그들에게 오르는 것은 자산이 아니라 문턱이다.
## 2. 그 문턱의 높이를 시장은 조용히 실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10월 셋째 주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13% 올라 89주 연속 상승을 이어갔다. 강남 3구가 약세를 보인 반면 성북·서대문·중구 등이 상승을 견인했고, 노원·중랑·구로 등 중저가 지역에서는 최근 3년 신고가가 잇따랐다. 강남이 숨을 고르는 사이 상승의 불길은 서울 외곽과 수도권 중저가 아파트로 번졌다. 그러나 이 흐름이 하위 20%의 사정을 바꾸지는 못한다. 오히려 중저가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면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의 자산은 늘지만, 지금 그 집을 사야 하는 이들에게는 진입 비용이 더 커진다. 토지 시장은 온도가 다르다. 농지 경매 건수는 늘었지만 매각가율은 43.8%에 그쳤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임야와 대지, 상업용 부동산에서도 비슷한 하락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자산 내부에서도 주택만이 유독 뜨거운 셈이다. 거기에는 공급 부족에 대한 기대가 가격에 먼저 반영되는 시장의 성질이 자리한다.
## 3. 정부의 대답은 공급이다. LH는 쌍문역 서측과 연신내역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의 협의보상을 시작했고,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신속통합기획을 통한 31만 가구 공급 구상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의 환경평가등급을 6년 만에 재평가하고 용산공원 용지를 주택 공급에 활용하려는 입법 논의도 같은 방향이다. 그러나 공급의 시계는 시장의 시계보다 언제나 느리다.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공사비는 최근 3년 사이 평균 39% 올랐고, 신반포21차는 66%, 노량진4구역은 97%의 증액 요구가 나왔다. 사업이 지연되면 공급 시점은 뒤로 밀리고, 그 사이 시장은 다른 가격으로 움직인다. 게다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파주의 한 단지는 주변 시세보다 1억 원가량 비싼 8억 원대 분양가를 책정했다. 가격 상한선이 오히려 기대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공급 확대가 곧장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4.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서 주택 정책은 시간 싸움이다. 공급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일견 하위를 위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그 약속이 시장에서 먼저 가격으로 반영되는 한 실제 수혜는 공급이 완성된 이후에나 도래한다. 하위 20%의 자가 거주 비율이 6.6%라는 사실은 정책이 집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순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들이 여전히 소유의 바깥에서 살아내야 함을 뜻한다. 290배라는 숫자는 그래서 자산의 비교가 아니라, 두 계층이 집을 통해 경험하는 시간의 격차다. “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어떻하면 넓은 집 천만 칸을 얻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을 모두 기쁜 얼굴로 덮여주랴. 두보의 이 오래된 물음은 집의 문제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의지에 달렸음을 말해왔다.